[제국주의와 태평양전쟁]
일본은 20세기초 조선을 손아귀에 넣고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켜 괴뢰정부를 수립하고, 이듬해인 1932년에는 중국 중심부까지 내려와 상하이를 점령합니다.
괴뢰정부라는 것은 한마디로 꼭두각시 정부를 말합니다. 현지인을 수장으로 임명하지만, 그 현지인은 점령국에 충성하고 요구하는 것이죠.
우리나라는 북한을 괴뢰군이라고 하고, 북한은 우리나라를 괴뢰정부라고 합니다. 이는, 북한공산당은 소련의 하수인이고, 우리나라 정부는 미국의 꼭두각시라는 것입니다.
흔히 2차 세계대전, 혹은 태평양전쟁의 시발점을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인해 시작됬다고 하는데, 실질적인 일본의 전쟁시작은 바로 만주사변이라 (혹은 1937년의 중일전쟁) 해도 무관할것입니다.
일본은 이렇게 조선을 아시아침략의 본거지로 삼고, 중국대륙으로 전쟁을 하며 서서히 영역을 넓혀갑니다.
중국은 당시 청나라의 쇠퇴기로 인해 일본의 준비된 군사적 침략을 막아내지 못하고 당하고 맙니다.
중국의 일부지역을 침략했던 국지전은 1937년에 중국본토에서 중국과 일본의 전면전 양상으로 커집니다. 바로 중일전쟁입니다.
청나라 쇠망후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세력으로 나뉘었던 공산당 모택통과 국민당 장계석은 당시에 일본과 싸우기 위해 게릴라전술을 전개합니다. 흔히 국사책에서 언급되는 ‘국공합작’입니다. 하지만 일본의 공격에 패퇴를 거듭하고 남경에서는 대학살이 발생하며 일본이 승승장구합니다.
유럽에서는 히틀러가 1차대전의 패전국이었던 독일을 다시 일으켜 세워 2차대전을 일으켰고, 미국은 1차대전 이후 국내경제가 좋지 않아 다른다라의 전쟁에는 중립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우방국인 영국이 미국에 파병을 끊임없이 파병을 요청하던 차에, 일본은 미국이 독일은 물론 일본에도 곧 참전할것으로 예상하고 미리 타격을 입히기 위해 태평양함대의 전초기지였던 하와이의 진주만에 선전포고도 없이 1941년 크리스마스를 목전에 두고 공습을 감행합니다. 진주만에 정박중이던 함대는 침몰하고 미국은 큰 타격과 충격을 입고 결국 루즈벨트대통령은 참전을 결정합니다.
미국은 약 6개월간의 재정비를 하는동안 일본은 제국의 영토를 필리핀, 베트남, 사이판등 동남아로 거칠것 없이 넓혀 호주 문턱까지 접근합니다.
필리핀의 경우 당시 미국에서 지배하고 있었고 총사령관은 맥아더 장군이었는데 맥아더는 일본에게 쫒겨나다시피 호주로 피신을 합니다.
그러면서 그 유명한 말을 남깁니다. “I shall return" 다시 돌아오겠다...
치욕적으로 패배하고 도망갔지만, 결국 3년뒤 미국점령시 필리핀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이 모든 제국주의 야욕의 근원은 ‘천황 (당시 히로히토, 쇼와천황)’에 충성하는 모습이었지만, 실제 일본군대를 움직이는 사람은 ‘도조히데끼’를 비롯한 군국주의자들이었습니다.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국민에게 천황은 곧 신. 종교처럼 받들게 세뇌시키고 천황의 명령으로 천황에 충성하고 목숨바쳐 싸우도록 하였으며, 이를 잘 이용한것이 바로 군부들이죠.
이 군부는 헌병대를 조직하여 일본곳곳의 젊은이를 전쟁처로 끓어냅니다. 일억옥쇄라는 명분으로 징병합니다. 일억옥쇄라는 것은 당시 일본인구가 1억명이었고, 모든 국민이 목숨바칠 각오로 전쟁에 임하자라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정말 천황에 충성하기위해 전쟁터로 나오기도 하지만 많은 젊은이들은 왜 죽으러 나가는지 억울하기도 하였을겁니다.
젊은이들을 전쟁터에 보내면서 ‘항복은 없다. 포로로 잡힐것 같으면 자폭하라’ 라고 명령합니다. 실제 동남아의 여러 섬에서 미군에 패색이 짙어지면 자폭한 일본군들이 부지기 수였습니다.
동남아 일대를 점령한 일본은 이제 전쟁을 더 크게 확장시켜야 할지 이대로 안정시켜 식민지로 운영할지 고민에 빠질때쯤, 미국은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군에 처음으로 승리를 한후 일본이 호주 문턱까지 점령했던 섬나라들을 하나씩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그 첫 문턱이 호주 바로위의 ‘과달카날’ 이라는 섬입니다.
일본은 워낙 많은 섬나라를 점령했고 도무지 정리도 안되고 통신도 빨리빨리 안될정도로 일을 크게 벌려놓은 상황이라 과달카날에 미군이 들어왔는지도 모르는 상태였고, 과달카날에는 몇천명정도만 비행장 공사를 위해 배치해놓은 상태였습니다.
미국은 바로 그 비행장을 탈취하여 일본 공세의 거점으로 삼고 싶었던 것이죠.
미국에 의해 과달카날이 점령된 사실을 안후에 일본 대본영에서는 다시 뺏기 위해 3번에 걸쳐 군사를 파견하지만 끔찍한 패배를 당합니다.
그래도 일본은 작은 섬하나 뺏겼다는 마음뿐, 크게 신경쓰지 않은듯 합니다.
하지만, 이후 미국은 레이테, 사이판, 필리핀, 이오지마 등 섬에서 연승하게 되고 일본의 기세는 꺽이게 됩니다.
특히, 세기의 전투로 불리는 ‘이오지마’ 섬에서의 전투(1945년 초)는 양국 모두에 끔찍한 전투로 기억됩니다.
일본군은 2만명중에서 900명정도만 살아남고 모두 몰살됩니다. 미국도 3분의 1이 전사하거나 부상당하게 됩니다.
섬이 워낙 작아 3일이면 점령하겠다던 미군은 5주나 계속된 전투로 많은 희생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일본군은 ‘쿠리바야시’ 장군의 지휘로 땅굴을 파고 항복하지 않고 버텼다고 합니다.
이때의 상황을 일본과 미국의 입장에서 제작된 영화를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일본군 입장에서의 영화는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미국입장은 ‘아버지의 깃발’입니다.
미군이 깃발을 세우는 장면이 바로 이오지마전투에서 나온 상황입니다.
한가지 궁금한것은 왜 섬들을 하나씩 점령해서 일본으로 올라갈까요. 그냥 바로 일본에 들어가 공격하면 될텐데.
그것은 바로 비행장 때문입니다. 미국에서 곧바로 일본까지 날아가기에는 당시 비행기로는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중간 중간에 비행장이 필요했고, 미국은 일본이 건설해 놓은 비행장이 있는 섬들을 하나씩 점령하며 올라간것입니다.
이오지마섬의 경우는 거리상으로 굳이 점령하지 않아도 되나 사이판에 비행기가 출격하면 중간의 이오지마 섬에있는 레이더로 미리 포착하여 중간에 공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이오지마에도 일본군이 건설해 놓은 비행장이 있었죠. 이 비행장은 일본공습이나 인근에서 피격을 받은 비행기들이 비상착륙하여 피해를 줄일수 있었습니다.
이후 오키나와에서도 치열한 전투로 많은 희생을 치른 미국은 이상태로 일본 본토를 상륙하여 전쟁을 치루면, 지금까지는 비교도 안되는 엄청한 희생이 생길거라는 불안감이 생깁니다.
특히, 전쟁 막바지에 일본은 비행기 자살특공대를 조직하여 (카미카제 神風(かみかぜ)) 미군의 함대에 대항합니다.
카미카제란, 13세기 일본을 침략하려던 중국원나라 군대가 해상에서 태풍의 거센 폭풍에 침몰하였다 하여, 이를 신이 도움 바람이라 불러 '신풍 神風(かみかぜ)' 이라 한데서 유래된 말입니다.
일본인들은 자기 미화나 과대포장하는데 상당한 특기가 있는듯... 그냥 원나라 함대가 재수없게 태풍을 만나 좌초한것인데요...^^
결국,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터트려 일본의 항복을 받아내게 됩니다.
독일은 이미 1945년 3월에 항복을 하였고, 히틀러는 자살을 하였으나 일본은 항복이라는것을 모르고 계속 버티다 엄청난 위력의 무기앞에 항복을 하고 만것입니다.
1945년 8월 15일 히로히토천황은 정오 라디오 연설을 통해 항복선언을 하지만, 실제 내용을 보면 미국에 항복했다는 말은 없습니다. 단지, 희생이 너무 커서 전쟁을 끝낸다고만 합니다.
유럽의 경우 전쟁이 끝나면 전쟁 주범들은 재판을 받아 대부분 사형에 처해지는데 일본천황은 처벌받지 않았습니다.
미국이 그 와중에서 머리굴리기에 바빳던것 같습니다. 어떤게 미국에 이득이 되는지...
결국 천황은 실제 권력에서 물러나고 상징적 존재로만 존재키로 미국과 합의하게 됩니다. 대신 군부세력상당수는 재판을 받고 사형에 처해지거나 옥살이를 합니다.
그 전범들의 유해는 ‘야스쿠니’ 신사에 옮겨져 지금도 일본인들은 그들을 추모하지만, 그럴때마다 제국주의가 다시 꿈틀거려 당시 피해국이었던 한국, 중국, 동남아 여러국가는 일본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비난하고 있습니다.
전쟁에 패한 일본은 천황이 실제권력에서 물러난 것 이외에도 정규군대를 가질수 없도록 하였습니다. 그래서 일본은 자국을 자체적으로 지키는 ‘자위대’ 라는 조직만 있는것이죠.
그리고 일본 이외의 국가의 전쟁에도 참전할수 없도록 하였습니다.
전쟁이 일시적으로 미국이 일본을 실질적으로지배할 무렵 우리나라에서는 ‘6.25’전쟁이 1950년에 발발합니다. 이때 미국의 군사적 물자를 일본에서 공급하면서 일본은 경제적으로 안정을 찾게 되고 지금의 경제대국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여기까지 일본의 중세부터 현대까지 역사를 큰 흐름으로 살펴보았습니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섬나라입니다. 육지에 대해 갈증이 심하죠. 그러한 콤플렉스에서 제국주의라는 성향이 나온것 같기도 합니다.
일본은 아직도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것은 전쟁이 끝났을 때 확실하게 매듭을 짓지 못한 미국의 잘못이 큰면이 있습니다.
그 중심에는 천황이 있습니다. 일본의 우두머리 군부세력이 만들어 놓은 미신적인 존재의 고리를 끊었어야 했는데 아직도 일본에서는 천황에 숭배하고 신적인 존재로 살아 있습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가 일제시대의 친일파를 청산해야 한다고 아직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오래전 일인데도 아직도 친일파 청산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우리가 해방이 되고 바로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역사가 반복된다는 것은,
(상상도 하기 싫지만) 혹시라도 일제시대와 같은 식민지 시대가 온다면, 과거에 친일파가 후에도 떳떳이 살아 잘 살았으므로, 그런사람들이 더 많이 나올수 있다는 것이죠.
과거에도 면죄부를 줬으니 또 그러겠지... 이런 심리를 갖게 되기 때문에 적국에 충성했던 세력에 충분한 처벌을 해야 또다시 나라를 빼앗기는 일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역사를 살펴보면 조금은 아이러니 한것이, 일본같은 경제대국에 ‘살아있는 신’ 이 존재한다는 것이죠.
어떻게 봐야할지는 여러분 각자에 맡깁니다.^^
- 다음에는 일본의 ‘천황’ 에 대해 좀 더 알아보겠습니다.